조성현 교수 - 김익두 목사의 설교세계

기사입력 2018.04.2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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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현 교수의
인물로 본 한국교회 설교사(3)
김익두 목사의 설교세계
 
초기 서양선교사들의 선교와 헌신의 열매로 한국의 영적 지도자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특별히 평양신학교 출신의 장로교 목회자로서 초기 한국교회에 우뚝 선 두 기둥은 평양신학교 선후배 사이인 길선주와 김익두이다. 길선주를 말세론의 대가라 한다면, 김익두는 부흥운동의 대부로서 흑암 중에 있던 초기 한국교회와 이 겨레에 빛난 복음을 전한 위대한 설교자이다. 이에 김익두(金益斗, 1874-1950)의 생애와 사역, 설교의 특징들을 통하여 귀한 설교자 세계를 떠나보자.
 
1. 김익두의 생애와 사역
일제에 의해 대한민국의 주권을 상실하고 깊은 좌절과 슬픔 속에서 1919년 삼일운동마저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경험하며, 정신적인 황폐함, 사회주의와 무신론의 대두, 자유주의의 발아(發芽), 기독교의 의기소침 등으로 소망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김익두이다. 길선주보다 5년 후에 출생한 그는 우여곡절이 많은 신앙과 목회의 여정(旅程)을 가진 신앙인이다. 김익두는 187413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대원면 평촌리에서 농부인 김응선(金應善)의 독자로 태어났다. 17세에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17세에 상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하고 술과 놀음을 좋아하는 완력가가 되었다. 그는 악명 높은 불량아로 안악군 일대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0027세 되던 해에 김익두는 어느 날 소안련(蘇安連, William Swallen)선교사가 인도하는 집회에 몰래 참석했다. 그는 영생에 대한 설교를 듣고 마음에 크게 찔림이 있어서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까지 10개월 동안 언행을 삼가면서 성경을 1백독할 정도로 생활이 경건해졌다. 그 후 19011월 마지막 주일에 소안련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1906(32)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3회 졸업) 후에는 목사안수를 받고 신천 서부교회, 남대문 교회와 승동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수행했다. 1920년에는 총회부회장으로 피선되어 총회장직을 수행하였고,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는 신촌 서부교회를 시무하면서 불같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전국적으로 부흥목사로서 사역을 하였다.
김익두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기적과 표적의 은사가 충만한 부흥사이다. 신유은사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91912월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교회에서 아래턱이 빠져 10년을 고생한 박수진을 치료한 사건, 19209월에 경남 부산진교회에서 8년 동안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부흥집회 요청을 받아 신유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김익두 부흥회 설교의 감화로 목사 된 자가 200, 치유 받은 자가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에 주기철, 이성봉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해방이 된 후에 이북에서 강양욱의 회유와 협박으로 조선기독교도 연맹에 가입하고 초대 총회장이 되었다. 19501014(76)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김익두 목사는 교인 6명과 함께 인민군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그의 사역에 그늘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복음의 충성된 증인으로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장렬하게 순교로서 삶을 마감했다.
 
2. 김익두의 설교특징들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1910년대를 시작으로 1930년대까지 한국민족에게 소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킨 김익두는 설교에 관한 저작은 전혀 없었지만 위대한 부흥설교자이다. 이에 김익두의 설교의 특징들을 살펴보자.
첫째, 서민적 언어를 사용한 부흥회 설교 이다.김익두의 설교는 선교사들이 전해준 삼대지 주제설교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선교사들과 달리 본문(text)과 상황(context)을 적절하게 균형을 잘 맞추어서 본문설교를 하려는 거룩한 씨름이 있었다. 김익두의 부흥회 설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천국, 그리고 회개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부흥설교를 전국적으로 인도하였다. 정성구는 김익두의 부흥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김익두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하면 수 십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교회 안은 비좁아 밖에 평상을 내어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설교를 하였다.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든지 김익두 목사의 힘 있는 설교를 듣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설교의 운동은 대단했다김익두의 부흥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은 그의 영감 있는 설교에 있었다. 그의 설교는 서민적 언어와 거칠고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이다. 그의 설교는 세련됨은 없었지만 그만의 독창성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여 그들의 언어로 설교했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게 환영을 받았다. 내용이 성경적 이면서 의외로 단순하고 삶과 관련된 실제적인 설교였다. 재미있게 구사된 시청각 설교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시장터 언어를 사용하여 익살과 유머를 가지고 청중을 집중시켰다. 설교를 위하여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면서 설교했다이러한 그의 부흥회 설교는 1910-30년대에 전국을 영적으로 소생하며 부흥하게 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둘째, 백성을 위로하는 목양설교(pastoral preaching)이다. 김익두가 목회와 부흥운동을 할 당시는 1920년부터 더욱 혹독한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가 계속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런 슬픔과 고통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출구는 거의 없어 보였다. 이때 가난하고 허탈해하고 소외당하고 버린 받은 것 같은 민초들에게 한 가닥 소망과 희망을 준 것은 백성들을 감성적으로 영적으로 위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 김익두의 목양설교이다. 주승증은 그의 목양설교에 대하여 그의 설교는 소외계층과 어두운 시대에 현 질서의 종말을 외쳤기에 가난하고 멸시받는 계층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의 희망의 메시지는 당시대에 소망의 산실이었고 침체의 늪으로 내려가고 있던 한국교회의 역동이었다고 했다.
셋째, 교훈적(didactic) 설교이다. 김익두는 성령운동을 주도한 부흥사이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는 오직 성령, 부흥, 말세 등의 부흥회적인 주제들만을 설교했을 것이라 추측이 되지만 정상적인 교회에서의 말씀과 기도를 통한 균형 잡힌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했다. 즉 기도, 말씀, 주일성수, 십일조, 계명의 준수, 흡연과 음주를 배격하는 청교도적인 경건의 삶, 교인의 의무 등 신자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교리적인 설교들을 많이 했다. 게다가 비 복음적인 신앙생활의 요소들인 사회적인 부패, 미신의 타파와 잘못된 신자의 습관과 관습등에 대해서도 올바르고 철저하게 회중에게 가르치고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의외로 교리적(교훈적)인 설교가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지침과 설교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사회로부터 배척과 핍박을 받을 만한 요소였지만, 역설적으로 교회가 더욱 순수해지고 성숙해지면서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김익두 설교의 부흥의 그늘에는 그의 설교가 너무 금욕적이고 율법적이며 엄격한 청교도적이라는 비판과 지적이 있지만,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한국교회의 기초석을 확립하려는 초기이기에 이해할 만한 면도 있다.
 
3. 나가는 말
김익두의 설교는 들리는 설교, 위로와 소망을 주는 설교, 회중의 눈높이를 맞춘 설교 등 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의 설교의 진수를 말한다면 영성 있는 설교이다. 한 번의 설교를 위하여 수없이 많은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한 설교는 현대의 설교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설교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감 있는 설교, 영적 진리가 으로 전달되는 설교를 회중은 지금도 갈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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