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칼빈(John Calvin)의 설교세계-조성현 교수

조성현교수의 설교로 보는 종교개혁(8)
기사입력 2017.08.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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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 보는 종교개혁(8)
존 칼빈(John Calvin)의 설교세계
조성현 교수(부산장신대 설교학 겸임교수PhD)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의 교회역사는 칼빈(John Calvin, 1509-1564)-칼빈은 프랑스 사람으로 장 칼뱅’(Jean Calvin)이라고 부르지만, 전통적인 이름으로 명명하겠다-을 단순히 위대한 이론 신학자, 주석가, 변증가, 종교개혁자로만 보아왔다. 그러나 그의 방대하고 위대한 설교사역을 탐구해보면 그가 역사상 가장 걸출한 설교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부패한 천주교에 대항하여 싸우는 신교(protestant)적인 의미를 넘어서 성경에 대한 재발견과 설교를 회복하여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위대한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설교자 칼빈의 정체성이 있기에 그의 설교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칼빈의 생애와 사상
칼빈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천식, 두통, 위장병, 신경통 등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칼빈에 대하여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약하지만 강한 거장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그 중요한 이유는 칼빈은 육체적인 약함과 가정적인 시련과 개혁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독교 강요(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집필 한 것은 그의 학문성과 지성적 연구능력이 얼마나 출중한 가를 보여주는 진면목(眞面目)이다. 칼빈은 1509710일 프랑스의 고대도시인 노용(Noyo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증인(notary)으로 교회와 관련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칼빈이 3살 때 사망했다. 칼빈의 공식적인 고등교육은 1523년 파리대학(University of Paris)에 입학함으로 시작되었으나, 보수적인 신학과 염격한 규율로 유명한 몽테규 대학(College de Montaigu)으로 옮겨서 공부했다. 1528년에 그러나 칼빈은 법학에 관심이 있어, 3년 동안 오를레앙(Orleans)과 부르즈(Bourges) 대학에서 법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1531년에 부친이 사망하자 자유를 얻어 고대 언어와 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 1532, 23살의 나이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533년은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파리대학의 학장이며 절친한 친구인 콥(Nicholas Cop)의 개혁적 취임사를 도와준 대가로 칼빈은 파리를 탈출하여 은거생활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종교적인 회심(1534년 경)을 하였다. 1536년에 초판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다. 이는 기독교 역사상 신학에 관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일 것이다.
칼빈이 제네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욤 파렐(Guillaume Farel)은 한밤중에 칼빈을 찾아와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동참해줄 것은 강권했고 칼빈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이것이 제 1차 제네바 사역(1536-38)이다. 칼빈은 제네바의 생 피에르(St. Pirre)교회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교사로 시작하여 얼마 뒤 목회자로 사역하였다. 그러나 제네바 토착세력의 반대에 부딪히고 충돌하여 급기야 1538422일 칼빈과 파렐은 제네바에서 추방당했다. 제네바를 떠난 칼빈은 마르틴 부처(Martin Bucer)의 초청으로 15389월 초 스트라스부르(Strassburg)로 가서 사역을 했다. 칼빈은 이시기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한다. 칼빈이 스트라스부르에 머문지 3년 만에 제네바 교회가 다시 그를 청하여, 2차 제네바 사역(1541-64)20년 이상 힘차게 일했다. 특별히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양성하고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도시로 만들어갔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믿음의 거장인 칼빈은 1555527일 지병으로 55세의 짧은 일기로 주의 부름을 받았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시작했지만 칼빈이 한칸의 조용한 연구실에서 집대성했으며, 완성했고, 확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의 설교 특징들
칼빈의 설교를 연구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칼빈의 설교(2013)는 대부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는 칼빈이 속기사를 비서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칼빈의 설교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성언운반일념’(聖言運搬一念)의 설교자이다. 칼빈은 설교에 대하여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주해하고 해석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다했다. 또한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사’(ambassador of God)이어야 한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사상, 신념, 그리고 철학을 설교해서는 안 되며, 성경에 쓰여 있는 진리 그 자체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수많은 설교를 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설교에서 설교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나 인간을 찬양하는 일들을 피하고, 오직 성경본문이 드러나도록 한 본문이 이끄는 설교’(Text-driven preaching)를 했다.
둘째, 연속 강해설교를 하였다. 칼빈은 연속적 본문 강해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전체(scriptura Tota)를 강해하여 역사에 남을 주석을 출판했다. 주일날 아침과 오후에는 신약성경을 설교했고(일정기간에는 주일오후에는 시편을 강해함), 평일 아침에는 구약을 설교했다.
셋째, 원전(원어)설교이다. 칼빈은 라틴어를 비롯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깊은 조예(造詣)가 있어서 성서원어에 능통했다. 칼빈의 원어설교에 대하여 파커(T.H.L. Parker)칼빈은 구약성경을 강해 설교할 때 구약원전을 직접 번역하여 설교했으며, 신약설교를 할 때도 신약원전을 가지고 설교했다. 또한 그는 구약원전이나 신약원전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어떠한 원고(any notes)도 없이 설교했다고 언급했다.
넷째, ‘성령이 이끄시는 설교’(Spirit-led preaching)를 하였다. 칼빈의 설교의 단점으로는 수사학적인 우아함이나 상상력의 부족, 그리고 설교가 늘 진지하게 진행되었고, 설교를 경청하는 회중의 자세에 대하여 과하게 엄격하였고, 설교유머가 없음으로 설교가 자칫 건조하게 전달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상쇄시킬 만한 그의 설교학적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성령의 내적 증거’(interior witness of the Spirit)이다. 칼빈은 그의 주장대로 말씀을 준비하면서,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했다. 미리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철저한 준비를 한 후 원고 없이 성경만 들고 한 시간 가량 설교를 했다. 그리고 상당히 영감 있는 설교를 하였는데 이는 그의 기억력이 천재적이라는 사실과 성령의 깊은 감동 가운데 성령의 내적 증거의 힘으로 설교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칼빈의 논리적이고 단호하며 엄격한 연역적 설교 방식은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청교도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서 강단에 보편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칼빈의 영향력은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많은 설교자들에게 설교자의 모델로 자리 잡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나가는 말
칼빈의 설교를 연구하면서 칼빈을 칼빈 되게 한 것은 과연 그의 설교임이 다시 한번 확실해졌다. 츠빙글리가 강조한 설교주장과 일부분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칼빈 만의 독특한 설교신학은 후세의 연구자들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칼빈의 설교를 통하여 한국교회 강단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이다. 첫째, ‘성언운반일념의 성경적 설교이다. “설교가 축사 같고 축사가 설교 같다는 어느 기독교 신문기자의 날카로운 지적과 같이, 한국교회 강단은 칼빈이 보여준 성경적 설교로의 회복이 필요하다. 둘째, ‘성령이 이끄시는 설교이다. 설교는 분명히 강의나 강연과는 다른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성령께서 조명해주지 않으면 단순히 공기를 울리는 인간의 작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설교는 결국 성령님께 달려있습니다라는 고백은 모든 설교자의 아름다운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칼빈의 설교정신(ethos)이 다시 활화산처럼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정정. 78일 자에 게재된 조성현 교수의 칼럼제목인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설교세계루터(Martin Luther)의 설교세계로 바로 잡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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