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효 칼럼 4 |

기사입력 2017.08.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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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효 칼럼 4 |
가뭄과 홍수
지난 달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대 가뭄으로 인해 농민들의 애간장을 불태운 가슴 아린 아픔을 우리 온 국민들은 겪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애간장을 타게 한 것은 그토록 기다렸던 장맛비가 끝없이 펼쳐진 사막 길에 꿈같이 나타난 오아시스의 샘물처럼 다가왔었지만 예고 없이 쏟아진 폭우로 인해 중부 지방과 서울 경기 지역 곳곳에 소중한 인명 피해를 비롯해서 숱한 재난과 더불어 불가항력의 수재 현장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복구 현장은 비지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이번 수해로 인해 망연자실하고 있을 수재민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조속한 회복을 주도해 주실 것을 앙망하며 꿇은 무릎과 움켜진 기도의 손에 더더욱 간절함을 더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극복할 수 있기를 응원 한다.
필자는 아주 어린 시절에 전형적인 농촌 사회에서 가난이란 등짐 아래 자라면서 일명 보릿고개라고 부르는 극한 가뭄과 홍수로 비롯된 대 흉년의 긴긴 강을 건너야만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나마 긴 장마와 홍수로 인해 썩어 냄새 나는 보리밥마저도 귀하고 귀하여 코를 막고 후딱 먹어 치웠던 나날들, 그것도 더 이상 구할 수 없어 연일 거센 쑥 잎을 뜯어와 절구에 찧어서 그것을 삶아 주식으로 먹었던 기억들 그 외에도 가난을 둘러싼 옛 얘기들이 너무 많아 제한된 지면에 옮겨 놓을 수 없지만 이미 고령의 나이를 횡단하고 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지 가끔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듣는 이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오히려 그 같은 보양식만 먹고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건강한 신수(身受)로 곱게 늙어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라고들 입을 모은다.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한 말은 분명 아닌즉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단지 아무리 어려운 시절도 지나가는 세월에 새겨져 인생사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음과 미래의 자화상에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며 현재를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일 수 있고 감사의 주제가 될 수 있음임을 고령의 인생 경험에 담아 얘기한 것뿐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애굽에 임한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 이야기는 구속사적으로 당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을 역사의 무대에 올려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임할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주목하게 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신적 지혜를 활용한 요셉이란 한 인생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온 최악의 상황에서 당시 애굽 근동 지역의 생명들을 살려 내는 영향력을 입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장차 오실 메시야께서 어떻게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할 것인가를 보여 준 사건적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와 유사하게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흥()과 망()의 경험적 사건들이나, 가뭄이나 홍수 같은 극과 극의 재난들이 인재이든 천재이든 간헐적으로 닥쳐와 역사의 기록에 페이지를 더해 가는 것이 언제인가는 마치 도적 같이 이 지구촌에 임할 종말의 때를 준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 들여야 함이 신적 지혜의 근본임을 이해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죄악을 조장하시거나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도출하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 인간 편에서 창조자와의 언약관계에서 그 조건들을 무시하거나 어겼을 때 죄와 형벌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를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 혹은 비상섭리의 현장으로 이끌어 경고한다.
그리고 가뭄이나 홍수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질서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은 결단코 없을 터,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릴 청지기적 본분을 망각하고 신적 문화 창달이 아닌 인간적 편의와 추구를 목적한 문화 예술 정치 사회 등등의 개발과 형성 과정에서 창조 질서를 감안하지 못한 무지와 미련함의 산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 문화가 아무리 첨단을 이끌어 가는 일명 수재들에 의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속도감을 더해가고 있지만 여호와의 뜻과 지혜로 견인차적인 역할이 부재하다면 제아무리 탁월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문명세계로 인류를 이끈다 할지라도 그 결국은 그 옛날 시날 평지의 바벨탑과 같을 것이며 소돔과 고모라 도성의 전철을 밟게 될 뿐이리라.
가뭄과 홍수 앞에서 조차 대책 없이 백기를 들어야 하는 첨단 과학 문명과 그 산물들이 어찌 감히 섭리주의 구속사적 의지에 제동을 걸 수 있겠는가? 역사는 성경의 메시지를 타고 흘러가고 있음임을 왜 모르는가? 현상은 본질로 풀어가야 함이 당연한 것, 현금의 지구촌에 몰아친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서 적어도 성경의 종말론적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세계관의 확립을 이 시대에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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