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효 칼럼 2 -불씨를 붙이는 사람

기사입력 2017.06.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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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효 칼럼 2 |
불씨를 붙이는 사람
우리 신앙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하나의 연합된 유기체적인 개념으로 성경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의 유기적 공동체 생활에서 자칫 불협화음이 심각한 영적 질환에 시달리게 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누군가가 비성경적이거나 그 공동체의 이념에 맞지 않는 부정적(否定的)인 불씨를 붙여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 존슨은 단체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박식하고, 결단력 있고, 활기찬 사람이 그 단체의 질을 결정한다. 어느 단체에나 이처럼 단체 활동에 불씨를 지피는 사람이 존재한다.”라고 했다. 구태여 버드 존슨의 말을 빌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떤 단체 어떤 모임이든지 어떤 문제에 불씨를 붙이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은 존재함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어떤 단체나 모임이든 또 그와 유사한 어떤 경우이든 그 무리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이 부재 했을 때의 경우에 직면했을 때, 어느새 부정적(否定的)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단체에 악영향을 주는, 즉 정의롭지 못하거나 그 공동체의 이념에 배치되는 불씨를 지피는 현상은 우리가 숱하게 듣고 보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나 교회라는 곳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신분과 계층, 성의 차별화가 없는 믿음의 공동체다. 더군다나 믿음의 성숙도는 천차만별이기에 더 더욱 이 모두를 오직 믿음으로 결속시킬 수 있는 불씨를 지필 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말씀의 불씨를 붙이고, 성령의 불씨를 붙이고, 전도의 불씨를 붙이고, 봉사의 불씨를 붙이고, 선교의 불씨를 붙이고, 사랑의 불씨를 붙이고, 그 외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 갈 수 있도록 영적 활력소를 불어 넣는 강력한 리더십의 불씨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자신들은 어떤가? 그 누군가가 불씨가 되어주길 기대하거나 바라기 보다는 바로 나 혹은 우리 자신이 그 불씨가 되어 교회를 말씀과 성령과 선교와 사랑과 전도의 강력한 활력소를 뜨거운 열정으로 지필 수 있다면 희망의 무한지대가 미래의 우리 기독자나 지상 교회가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가는 선교의 장()이 아닐까 싶다.
참 어려운 주문일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그리스도적 희생이 전제되는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위에 열거한 불씨들이 오히려 모든 일상에서 묻어 나와야 할 영적 기호들의 목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씨는 붙이는 것을 특성으로 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자신이 먼저 불씨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불씨를 붙일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 스스로 구원의 불씨가 되시기 위해 당신이 구원하실 모든 백성들의 죄와 오염 그리고 죄책까지 모두 취하셔서 대속의 희생 제사로 도말하셨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가끔 교회를 폐수 처리장에 비유하여 설명할 때가 있다. 그것은 필자 나름대로 교회의 구성원들 모두 성화되어야 하는 죄인이요, 죄의 오염에 노출된 자요, 죄의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는 전적으로 타락한 실존들이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주님은 바로 이 같은 교회 구성원들의 모든 허물과 죄악 그리고 죄책과 오염들을 도말하시고 구원하시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혹은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 마치 폐수 처리 과정에서 온갖 부유물을 안고 침전한 석회처럼 온갖 죄악의 부유물들을 끌어안고 십자가에 대속의 희생 제사로 불태워 성취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시어 우리의 부활 영생을 확정하신 것이기에 필자는 보다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나름 폐수 정화 과정을 교회에 적용하기도 한 것이다.
만약 이 비유가 지나치다고 하실 분이 계시다면 필자는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정한 긍정의 불씨는 모든 허물과 부정(不正)을 끌어안고 희생함에서 역사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고 또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모든 허물과 부정(不正)을 끌어안는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개념이지 그 속에 자신을 던져 넣어 같은 류()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기에 오해 없으시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의 진정한 불씨는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자들이 붙이셨던 성경으로 돌아가는 불씨로서 각 교회마다 그리고 성도들마다 주저함이 없이 이 불씨를 붙여야 할 때라고 본다. 물론 그 불씨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또한 이 글을 통해서 그 어떤 독자의 가슴에 개혁의 불씨를 붙일 수 있고 진정한 교회관과 진정한 사역적 가치관에 긍정의 불씨를 붙일 수만 있다면 결코 이 작은 지면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소망하며 점점 짙어가는 유월의 신록에 새겨진 생명력과 함께 이 작은 목자의 심장에 붙은 불씨를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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