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로 보는 종교개혁(7)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설교세계
기사입력 2017.07.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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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6세기의 종교개혁(reformation)은 중세의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점이 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 발화(發火)의 중심에 서있는 분이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동인이 된 과학문명의 발달,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발흥, 면죄부 사건과 같은 시대적 정황이 분명히 있었다. 또한 종교개혁의 새벽별인 위클리프, ‘체코 종교개혁의 아버지후스, 그리고 종교개혁의 세례요한인 사보나롤라 등의 정지(整地)작업을 통하여 하나님은 루터라는 한 인물을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구로 그를 사용하신 것이다.
 
독일 종교개혁자 루터
후스는 순교를 당하면서 100년 후에 로마교황청이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것을 예언했는데 그가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그의 예견대로 102년 후에 루터는 중세의 암흑기에 빛을 비추는 종교개혁을 15171031, 독일의 비텐베르그 성 교회(castle church in Wittenberg) 정문에 면죄부 남용을 고발하면서 95개조의 반박문(Ninety-five Theses)을 내걸고 교황청과 일전을 벌였다. 이 사건이 개신교 탄생을 알리는 서곡(序曲)이 된 것이다. 루터는 1483년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태어나 에르푸르트(Erfurt)대학에 입학하여 아버지 한스(Hans Luther)의 소원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150572,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중 슈토테른하임(Stotternheim)에서 무서운 천둥과 벼락을 만났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루터와 함께 있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죽었다고 한다. 루터는 그 순간 공포에 떨며 성 안나여! 나를 도와주소서. 그리하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생존을 위하여 급하게 서원기도를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의 다메섹 체험과 같이 루터를 당신의 종으로 삼으시기 위해 개입하신 사건이었다. 이후 루터는 엄격한 규율과 훈련으로 유명한 성 어거스틴(Augustinian) 수도원에서 수도사의 길을 걸게 된다. 그후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1512년에 성서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서학 교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워커(Williston Walker)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까지 루터 내면의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다. “루터는 수없이 많은 고행과 수련을 행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내면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없었으며, 영혼의 평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이룩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에 루터는 후에 개신교 신학의 모체가 되는 삼대교리를 정리하게 된다. 인간은 선행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Sola Fide), 모든 신자는 인간의 중재 없이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Sola Gratia),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삶과 행위에 유일한 기준이 된다(Sola scripture)는 사상을 정립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되었다.
 
루터의 설교 특징들
루터는 성경 번역자, 작곡가, 신학자, 저자 등으로 불러지지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설교자이다. 다간(Edwin C. Dargan)은 루터에 대하여 묘사하기를 그는 학자로, 신학자로, 지도자로 역할을 했지만, 루터의 가장 중요한 직임이 설교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루터의 설교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설교는 종교개혁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부적 설교자이면서 하나님께 사로잡힌 설교자인 루터의 설교를 살펴보자.
첫째, 성경중심의 성경적 설교였다. 루터가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비텐베르그 대학교에서 로마서를 비롯하여 성경 강의를 하면서 그의 성경관이 바뀌었다. 바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e)인 것이다. 패티슨(T. Harwood Pattison)은 루터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였는지에 대하여 그는 성경 자체에 대하여 목마름이 있었기에 3개월 동안 쉬임 없이 신약성경을 번역하는 놀라운 열정을 보였다. 성경에 대한 그의 사랑은 루터로 하여금 위대한 성경적 설교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루터는 그당시 설교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신비한 전설을 설교의 소재로 삼은데 비하여, 그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가지고 회중의 실생활에 적용했다. 루터설교의 관심은 오직 본문의 의미와 성경저자의 원래적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서 성경해석을 하고 이를 적용하는 성경중심의 성경적 설교였다.
둘째, 예수그리스도가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 루터는 성경 중에 로마서를 가장 사랑했으며 율법과 복음의 도식을 가지고 로마서와 성경의 대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설교의 초점에 맞추었다. 구원에 관한 한 율법주의나 공로주의를 배격하고, 내가 스스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는 이신칭의’,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주제로 삼았다. 팬트(C. E. Fant)와 핀슨(W. M. Pinson)은 말하길 설교에 있어서 루터의 중요한 판단은 설교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있는가? 였다. 만일 예수그리스도가 없거나 가볍게 언급하고 있다면,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라고 했다. 루터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으며, 그 분을 과감히 드러내는 데 있었다.
세째, 교회력을 충실히 따르는 예전적 설교를 하였다. 중세시대는 시각적인 미사 중심으로 흐르면서 설교의 위치가 매우 불완전하고 무시되었다. 그러나 루터의 말씀 중심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미사에서 설교의 중요성과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성찬으로만 기울여진 예배에서 벗어나서 성찬과 말씀, 설교와 성찬이 균형을 이루면서 초대교회의 예배 회복을 이루게 되었다. 이에 루터의 설교는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달리 교회력을 충실히 따르는 예전적 설교였다. 이에 브릴리오드(Yngve Brilioth)"루터는 페리콥(pericope: 예배 때 읽을 성경구절을 교회력에 따라 규정한 것)을 사용하였다. 해마다 대강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 절기에는 동일한 본문을 가지고 교회력에 따라 설교를 하였다. 이는 루터 이후에도 루터교의 독특한 예전과 설교가 되었다고 했다. 이는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중세의 예배 예전의 틀을 거의 파괴하고 비 예전적인 예배와 설교형태로 나아가는 데 비하여 성찬과 설교의 균형을 이룩하는데 크게 공헌 한 것이다. 그밖에도 루터의 설교는 불타는 열정이 있었으며, 간단하고 명료하면 쉽게 설교를 전달 하였다. 그러나 루터의 설교에서 아쉬운 부분은 본문은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설교의 서론과 결론은 상대적으로 소흘히 취급하여 준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의 원조로서 루터는 설교가 있었기에 개혁이 가능했고, 말씀선포에 목숨을 건 위대한 설교자임에는 틀림없다.
 
나가는 말
한국교회 강단에 루터의 설교를 통해 적용 가능한 부분은 두 가지이다. 첫째, 예수그리스도를 과감히 드러내는 설교가 무던히도 필요하다.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Christ-centered Preaching)이다. 둘째, 성찬과 설교가 균형을 이루는 예배 예전 및 성서정과 설교가 필요하다. 설교로만 기울어진 개혁교회 예배가 매주 성찬이 거행되는 초대교회의 원형을 따라서 최소 매월 1회 정도는 성찬을 통하여 보여주는 말씀’(Visible Word)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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