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욱 목사 칼럼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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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경품권 수집과 현물화의 의미와 그 사례를 하나 살펴보았다. 경품권 수집을 스탬프 수집이라고 표현해 왔는데 이원영 교수는 “스탬프”를 “포인트”라고 적는다. “마일리지”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번에는 다른 사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박씨가 어느 날 출근시간보다 5분 늦게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마음에 찔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황급히 자기 자리로 갔다. 상사인 이 주임은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박씨에게 에누리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주임은 박씨에 대해 마음속으로 “아 이 사람 보게, 늦게 출근한 주제에 인사까지 안 해!”하는 생각을 했다. 즉 회색 경품권을 저장한 것이다. 며칠 후 박씨는 또 지각하였다. 이 주임은 이번에도 모른 채했다. 그러나 박씨에 대한 이 주임의 회색 경품권은 또 하나 늘어갔다. 그런데 박씨가 기안한 서류에 오타가 있었다. 박씨에 대한 이 주임의 회색 경품권은 점점 이자까지 붙어갔다. 그런 어느 날 이 주임이 상사인 김 과장으로부터 이 주임 팀이 실적이 나쁘다고 질책을 받았다. 하필 그 때 박씨가 1, 2분 늦게 출근했다. 마침내 이 주임의 축적된 회색 경품권이 현물화 되었다. “이봐. 박씨! 당신 지금 직장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매일 지각이야! 서류 하나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면서 말이야!”
또 다른 사례이다. 김씨는 좁은 골목길을 요리 조리 돌아 올라가는 산 중턱에 근무처가 있는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출근을 한다. 8~10분 간격으로 다니는 마을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바쁜 마음에 택시를 이용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마다 택시 기사의 표정이 좀 떨떠름하다. 출근 시간에 이런 좁은 골목길로 가자는 손님이 못 마땅하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씨는 속으로 회색 경품권을 모았다. 한 번은 김씨를 내려주면서 “우리 다음에 만나지 맙시다.”하고 기사가 말하면서 택시를 몰고 내려가 버렸다. 김씨의 부정적 경품권은 날을 세웠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택시를 잡은 김씨가 예의 그 산길을 가자고 말했을 때, 기사가 “방금 다른 산길을 가자는 손님을 거절하고 왔는데 또 산길!”이라며 투덜댔다. 그 때 마침내 김씨의 회색 경품권 뭉치는 폭발했다.
“지금 뭐라 하셨죠? 이거 분명히 탑승거부죠?” 김씨의 고함소리는 택시 밖 공기마저 흔들어 놓았다. 김씨가 이용한 택시는 그 때 마다 다 달랐지만 택시 기사에 대한 그의 부정적 감정이 모아져 마지막 기사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던 것이다. 출근길에서 서로 주고받은 부정적 감정은 그 날 온종일 두 사람을 침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의 일로 인한 회색 경품권을 세겜 남자들에게 현물화했다(창34장). 다윗 군대의 지휘관 요압이 아브넬을 속임수를 써서 살해한 일(삼하3:22~29)도 그의 회색 경품권의 현물화라 할 수 있다.
김춘경(2018)은 “현실적이고 유연한 대인신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다윗은 자신을 위협하는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다.(삼상24장, 26장)
허성욱
한국교류분석상담학회 수련감독, 한국복지상담학회 부회장, 한국심성교육개발원 부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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