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효 목사의 목양칼럼 ◇

리피트
기사입력 2020.12.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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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트(Repeat)는 음악 용어로 악보에서 어느 부분에 D.C 혹은 D.S로 표기하여 이 구간을 되풀이해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라는 기호로 반시기호(反始記號), 반복 기호(反復記號), 되돌이표 등의 의미를 총칭하는 용어다. 또한 반복의 개념으로 일반화 되어 다양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는 한 곡의 노래에 담아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사가의 메시지를 곡으로 어필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기교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대목이라는 의미다. 우리의 음식 문화에서 주식(主食)과 간식(間食)이나 특식(特食)의 차이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간식이나 특식은 배경 음악과 같은 음식이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다. 주식은 주제 음악과 같은 음식으로 우리 인생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생존이었고 생명의 양식이었다. 매일 매식 먹고 또 반복해서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 음식이 주식이다.
보편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되는 일상과 인간 삶을 고리타분하게 여겨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현재가 있고 또한 그런 상태가 반복적으로 유지된다면 이는 최고의 감사 조건이 아닐까 싶다.
매일 매식 때마다 차려진 밥상을 대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그 밥에 그 반찬이네하고 투정하지는 않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 밥상이 있었기에 밥상 앞에 앉은 자신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주식(主食)’이나 밑반찬이라는 고유 명사를 얻은 것이 명불허전일까?
사람의 이름은 왜 오직 하나의 이름만을 지어서 그 이름을 반복해서 부를까?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에게만 붙여진 고유 명사이기 때문이다. 곧 타인들과 구별하여 오직 그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인 것이다. 성도, 교인, 신자, 크리스천, 그리스도인, 신앙인, 등등 모두 불신의 사람들과 구별 짓는 고유 명사다.
따라서 리피트는 그 음악의 클라이맥스다. 전체 가사를 배경으로 하여 리피트의 의미로 어필하고자 시도한 예술 행위인 것이다. 그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새롭게 시도하는 것은 개혁의 의미가 강하다. 기존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다시 뿌리를 심는 것이 개혁이 아니다. 성경은 해 아래 새것은 없다고 말씀한다(1:9).
개혁은 기존의 뿌리를 뽑거나 흔들어서는 안 된다. 뿌리는 본질이다. 따라서 뿌리는 뽑아버리는 행위는 타락이다. 개혁은 기존의 뿌리에 합당하지 않은 열매나 그 열매와 상관된 가지를 전지하는 작업에 해당된다. 그리고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환경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적극적인 행위다.
그러므로 반복은 그 발전의 터전이요, 기둥이요, 중심이요, 핵심 메시지요, 또한 훈련이다. 음악이든, 우리 인생이든, 특히 기독자의 신앙의 세계이든 리피트가 명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국가도 위정자도 정치인도 공직자도 재야도 국민도 매 일반이다.
타성에 젖은 방종은 개혁도 발전도 그 무엇도 아니다. 어린아이에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줄곧 반복 교육을 한다고 해서 지나치다고 비판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친구와 말다툼하다 얻어맞고 온 아들에게 아이의 엄마가 야단을 쳤다.
왜 바보같이 얻어맞고 다니냐며 핀잔을 주었고 급기야 너도 한 대 얻어맞으면 두 대 세 대라도 때려라고 다그쳤다. 아이 엄마의 논리가 현실의 교육 현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교육의 본질도 최소한의 윤리도 없는 방종과 타성에 젖은 경우이기에 반드시 지양(止揚) 되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달라졌다고 해서 사람의 도리나 진리까지 동요하거나 굴복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와 기둥은 오랜 세월 동안 반복적으로 교육해 온 교육 현장의 기반이다. 그래서 이를 기본 교육으로 지정하여 의무 교육으로 절대화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행여 말씀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귀에 따갑도록 반복적이라고 느껴져 식상(食傷) 하게 받아들이는가? 그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성찰하기 바란다.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들이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부모의 기대치다. 이와 다를 바 없다.
말씀의 거듭되는 강조는 성령의 탄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유익할 것이다. 리피트의 확대 해석과 의미 해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그 의미를 새겨 봄을 권장한다. 특히 신앙의 세계에서 신적 지혜와 슬기를 얻는 데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열두 달을 열심히 달려왔건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또다시 열두 달을 달려갈 준비를 새로운 마음에 희망으로 담아낸다. 그런 세월을 일생 동안 달려왔는데도 말이다. 리피트의 의미를 새기고 또 새기며 금년의 십이월을 잘 마무리하고 새롭게 준비된 마음가짐으로 새해의 일월로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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