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비대면 예배, 예배의 한 형태로 받아 들여야”
기사입력 2020.11.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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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예배냐 비대면 예배냐예배 형식에 매달려선 안돼
형식 보단 내 죄를 고백하고 순종 결단하는 내용이 중요
 
예배를 예배되게 하라
사람중심의 자기위안에서 벗어나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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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예배를 절대시하면 원리주의에 빠질 수 있다. 원리주의란 무엇인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원리주의에 입각한 행동은 교회가 코로나 감염병의 중심에 서 있고,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이 상황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즉 이러한 행동은 공동체에 치명상을 끼치는 해악이며 패착이다.
게다가 신앙심깊은 평범한 어르신들이 특정 집회에 내몰리고, 또 이들이 전파자가 된 최근의 일들과 관련하여 교회가 책임없다할 수 없다. 마태복음 86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따라서 한국교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한 개념을 잡아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러면 예배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즉 예배란 내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교회, 교인의 입맛에 맞춘 설교, 유창한 기도, 수준있는 찬양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셨느냐. 이게 중요하다.
또 새신자가 많이 오고 참석자가 많았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다. 사람 중심의 자기위안과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였냐가 중요하다.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개신교적 예배란 은총의 수단인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일하시는 것으로 출발하여, 인간이 그 은총에 기도와 찬송과 감사로 반응하는 상호 소통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둘째, 성령과 진리로 드려져야한다. 요한복음 4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그러셨다. 그러므로 예배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드려져야한다.
따라서 내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은혜를 구하는 것, 이게 예배의 출발이다.
히브리서 108절에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따라서 율법적 예배가 아닌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여야한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란 나를 버리고 순종이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다.
하나님은 내 욕심을 이루고자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 이게 산 제사이며 영적 예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로마서 121절에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거룩한 산 제물이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을 말한다. 즉 미움, 다툼, 시기, 질투를 버리고 형제와 화목한 다음 예배드려야한다.
셋째,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이사야 4321절에 이 백성을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은 찬양을 드려야한다. 이것은 마땅한 도리이며 책무이다.
시편 1234절에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예배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자리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위해 열방에 영광을 계시하는 분이시다.
시편 963~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예배가 이같은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나므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아무 의미 없는 예배가 되고 만다. 하나님이 모든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다. 이것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신다. 결국 예배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야 한다.
16세기 지나친 형식주의와 부패에 빠진 로마가톨릭이 예배의 본질을 잃자 개혁파는 오직 성경전체 성경안에서 예배 원리를 규정한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내세운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교회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예배의 형식이나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모든 예배는 이같은 예배의 본질을 충실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배의 본질을 담아내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본래적이고 전통적인 예배의 형태가 현장의 공적 예배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6항은 공적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이나 섭리로 부르실 때는 공적집회에서 더욱더 엄숙히 예배해야 하는데, 이런 공적 집회를 부주의하거나 고의적으로 소홀히 하거나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 예배만 허용한 정부 조치에 따르지 않고 현장예배, 대면예배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적 예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어떤 박해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교회의 근간이 되는 예배이다. 주일성수와 현장예배는 영원한 명령이요 도덕법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라는 전염병 팬데믹 상황 속에서 비대면 예배가 떠오르고 현장예배를 보는 것에 대하여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한국교회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분명한 지침을 정해야만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현장예배가 아닌 비대면예배를 본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 어긋나거나 신앙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예외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교회사를 보면 항상 현장예배, 즉 공적예배를 드릴 수 있는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부터 개신교의 2천년 역사는 끊임없는 피난의 역사였다. 피난의 역사를 빼놓고는 개신교의 역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전쟁, 전염병, 핍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현장예배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골방과 카타콤이라는 무덤으로 숨어들었던 신앙인들에 의해서 교회가 이어졌다.
즉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예배의 본질을 지킨다면 장소나 방향에 메이지 않고 홀로든 가정에서나 어디서든지 예배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즉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이냐 향하지 않은 것이냐. 즉 사람을 향한 것이냐 이것에 따라서 예배의 가치가 결정되어야지 꼭 현장예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현덕 기자. youbihyund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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