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예배, 이것도 예배가 될 수 있을까?

정부, 코로나 핑계 삼아 교회 너무 거칠게 몰아 붙였다
기사입력 2020.10.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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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교회 향해 중보기도 요청했어야 마땅
비대면 예배, 정상적인 예배라 보기 어려워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가 큰 오해를 받고 있다. 신천지에서 코로나를 확산 시켰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사실 따져보면 예배가 코로나를 확산 시킨 게 절대 아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확산된 것뿐이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킨 교회는 단 한 사람도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예배 드림으로 인해 코로나가 확산되었다면 응당 예배는 금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배가 아니라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코로나가 확산되었다면 일률적으로 예배를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 어불성설이다.
성도는 모이는 것에 힘써야한다. 물론 모이려면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칼빈과 루터를 언급하면서 비대면 예배를 권하지만 그들의 말한 얘기의 핵심은 예배드리지 말라가 아니라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전염병자를 격리시키라 그러셨다. 이것 역시 예배드리지 말라가 아니라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라는 말씀이다.
언론에서 마치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 것처럼 연일 보도를 쏟아내니까 일반국민들은 예배가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인줄 알고 모여서 예배드리면 범죄신고 하듯 신고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얼마 전 문대통령에게 전 세계 57개국 266개 단체에서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내용은 코로나 방역을 핑계 삼아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거나 한국교회를 희생양 삼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또 종교의 자유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교회를 향해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 으름장을 놓고 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 따라서 비대면 예배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즉 비대면 예배를 강제하는 것은 말하지 말고 대화하라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다시 말해 예배란 모여서 드리는 것인데, 모이지 말고 예배드리라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인간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그러셨다.
거룩이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단어이다. 쉽게 말해 안식일이란 하나님의 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가리켜 주의 날이라 부른다.
이어 주의 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는가. 곧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주의 날이 되면 나의 일을 접고, 더 나아가 공부, 여행, 업무, 취미, 즐기는 것 일체를 모두 접고 오직 주를 찬양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이어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이것이 바로 예배이다.
한마디로 예배란 무엇이냐? 예의를 갖추어 하나님께 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오직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혼자서도 예배드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크게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방법인 전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도, 또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하신 것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짐으로 자연스럽게 교회라는 것이 조직되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 그러는데 그 뜻은 부름받아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즉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아 따로 모인 무리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지체는 성도들이다. 물론 지체들인 각각의 교인들이 머리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비로소 한 몸, 곧 교회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다.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결국 말라서 불에 던져진다.”고 하셨다. 가지와 포도나무가, 곧 지체와 몸이 하나 되는 것은 마음으로 또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신앙이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산제사이다.
이런 진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 할지라도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이다. 즉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다.
그러면 진정성은 있는데, 즉 주를 향한 사랑도 있고 믿음도 있는데, 모이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자 예배드려도 무방하다.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셨다.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내가 이루리라그러셨다.
즉 혼자보다 최소한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주께서 훨씬 더 기뻐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모이는 방법을 강구하고 모이는 일에 힘을 써야한다.
주의 날, 곧 주일에 경건한 마음으로 각각의 지체들이 머리 되시는 주님과 만나 여러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 주께 한마음으로 경배드리고 한목소리로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고 주의 말씀을 전해 듣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그런데 예배의 본질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니 코로나를 확산시켜 백성들을 해하지 말고 비대면으로 예배드리란다. 무엇보다 작금의 언론들이 이것을 거의 세뇌시키다시피하고 있다.
예배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거듭 강조하거니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거룩한 행위이다.
또 예배는 남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구하는 것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주여 모든 기도를 들어주소서. 특별히 범죄, 전쟁, 기근, 온역, 환란을 당해 기도할 때 들어주소서이렇게 간청했다.
따라서 정부는 교회를 향해 당신들이 섬기는 하나님께 이 코로나 온역을 물리쳐 달라고 좀 간구해 주시요라고 했어야 마땅하다. 이게 맞다.
아울러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하지만 그것마저도 드리지 않고 오랜만에 잠이나 실컷 자자
하는 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밀렸던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옷도 제대로 차려입지않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컴퓨터나 TV앞에 앉아 있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드러누워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절반쯤 설교를 듣고 이내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갖추어서 절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자기가 예배의 주체가 되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객관적 대상이 된 것이다.
개신교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설교에 있다.
비대면 예배도 괜찮다그러지만 어디 예배가 설교만 들으면 다 되는 것인가.
그러니까 여러 지체가 한 마음으로 한 주님을 향하여 마음과 시간을 드리며 한목소리로 찬양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주와 하나 되는 성령의 역사가 비대면 예배로 가능하겠느냐하는 것이다.
나와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저희도 우리와 하나 되게 하옵소서이런 예수님의 기도가 비대면 예배로 성취되겠느냐는 말이다.
흩어져 있던 여러 지체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면서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격려하며 하나의 믿음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믿음이 성장하는 것. 이게 바로 참된 예배라 할 수 있겠다.
초대교회 역사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건질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이런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120명의 제자들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고 방언이 터지며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았던가.
또 엄청난 핍박이 있었지만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기도할 때에 병마가 떠나며, 표적과 기사가 예수이름으로 나타나도록 도와주시옵소서그럴 때 그 모인 곳이 진동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전무후무한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모여서 기도하고, 모여서 찬송하고, 모여서 격려할 때 능력이 나타났고 교회가 교회다워졌다는 것이다.
즉 비대면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어찌하든지 모여서 예배드렸어야 한다.
큰 교회는 코로나 종료 시 까지 50명 미만의 작은 교회로 성도들을 파송하여 예배드리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싶다.
덧붙여 정부는 언론 등을 통해 스크럼을 짜고 마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코로나 확산의 근원인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
즉 대부분의 교회들이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교회를 이참에 거세게 몰아붙이려고만 하지 말고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삼아야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향해 모여서 코로나 재앙이 속히 끝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이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하현덕 기자. youbihyund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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