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0주년 특집 | 6.25 전쟁기 부산에 설립된 피난민 교회 _3
피난민 교회 외 서울교회가 부산 피난으로 교회 설립하기도
기사입력 2020.04.1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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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상규 목사(고신대 명예교수, 백석대 석좌교수)서북교회(현 동광교회, 1952. 1)월남한 평양 창동교회 교인들은 1952년 1월 6일 자갈치 시장 조덕성 집사댁에서 이순경 목사와 이연희 장로와 60여명의 교우들이 서북교회를 설립했다. 곧 부산시 중구 충무동 1가 9번지로 이사하였고, 1952년 9월 12일에는 채필근 목사 부임하였다. 그는 1960년 10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1953년 11월 1일에는 채필근 목사 외에도 임관덕 임원근 함정옥 장로 등으로 당회를 조직했고, 대한예수교 장로회 평양노회에 가입했다. 1957년 1월 25일에는 용두산공원 아래쪽인 중구 동광동 2가 17번지에 296평의 교회 부지로 매입하였고, 이듬해 이곳에 예배당 기공을 하여 1958년 8월 10일 준공하였다. 1961년 7월 23일에는 서북교회를 동광(東光)교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현재 이 교회의 지번이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2가 17-18번지인데, 이 교회에서 이순경, 채필근, 림인식, 김광명, 장윤성, 이석근, 김정광 목사 등이 시무했다.부산서교회 (1952. 4)부산서교회는 평양 서문밖교회에 출석하던 이들에 의해 1952년 4월 설립되었다. 황해도 소화군 풍천면 출신인 정관모 장로와 그 가족, 홍종락, 윤기하 장로, 신의주 출신인 김신도 등이 초기 인물들이다. 1.4, 후퇴 때 월남하여 부산으로 온 이들은 판자촌에 거주하면서도 두고 온 교회를 복원하기 1952년 4월 구덕산에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렸다. 후에는 충무동 초등학교로 이전하여 예배드리다가 아미동에 대지를 확보하고 교회당을 건축했다. 이때 미군부대로부터 목재 등 물자를 지원받았지만 성도들의 땀과 기도로 건축했다. 정관모 장로는 숭실학교 출신으로 서문밖교회에서 장로로 장립받았는데, 서교회 설립 때부터 긴 기간동안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술하에 2남4녀를 두었는데 둘째 딸 정성숙 권사는 대를 이어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김신도 권사와 함께 70여년 간 교회를 지키고 봉사하고 있다. 초기 인물 중 김성완 집사는 교회를 위해 물질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충심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다. 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미국에서 세상을 따났다. 첫 교역자는 역시 평양서문밖교회 출신인 이광수 목사였다. 초기에 윤기화 장로의 아들 윤명호가 전도사로 일한 바 있다. 고신교회에 속한 이 교회의 현재 담임목사는 최삼순 목사이다.신암교회 (1952. 10)신암교회는 평양에서 살던 중 남하한 8명의 교인이 강도일 집사를 중심으로 신암동에 모여 안명진 목사를 모시고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1953년 2월에는 천막으로 예배당을 가설하고 임시 예배처를 확보했다. 1953년 8월에는 림인식 목사가 부임하여 2년 간 사역하고 1955년 7월 사임했다. 1954년에는 신암동에 예배당 신축 기공식을 하여 1955년 10월 예배당을 준공했다. 준공 두 달 전에 이찬영 목사가 부임하였으나 1년 4개월간 시무하고 1956년 12월 사임했다. 그 후 이동희(1956. 12- 1958. 12), 임종은(1959. 3-1960. 2), 배순직(1960. 5-1964. 4), 고용일(1964. 5-1968. 2), 최오균(1968. 4-1972. 7), 김태헌(1972. 7-2006. 12) 목사가 시무했고, 1977년 4월에는 연건평 194평의 신축예배당을 준공했다. 현재에는 권태일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부산에는 이런 월남 피난민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 외에도, 서울에 있던 교회가 부산으로 피난와 설립한 교회도 있다. 그 교회가 부산 사하구 당리동에 위치한 동신교회이다. 1950년 12월 10일 남하한 서울 창신교회 성도 20여명은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기로 하고 1951년 초 국제시장 내의 건국중학교 교실을 빌려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가 부산창신교회인데, 담임목사는 권연호 목사였다. 그는 1946년 5월 서울 창신교회에 부임하여 당회를 조직하고 교회의 면모를 일신하였고, 부임 2년 만에 교인이 3배 정도 증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부산에 서울에 있던 교회를 재건한 것이다. 1953년 국제시장 대화재로 예배처를 광복동 동주여상 교사로 이전하였다. 화재 수습 후 안정을 되찾게 되자 다시 건국중학교로 옮겨 갔다. 이후 부평동에 교회당을 마련하고 예배드리다가 1963년 동신교회로 개명했다. 1983년 11월 13일에는 현재의 당리동에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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